들어가며
나는 기술이 대중화되었는지를 확인할 때, 아내를 자주 관찰한다. LCD TV, 스마트폰도 아내를 통해서 대중화되고 있구나를 알았다. IT 업계에서 일하는 나와 달리, 그녀는 기술을 도구로써 '필요할 때 적절히'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런 아내가 요즘 ChatGPT를 능숙하게 다루는 걸 보며, 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정말, 누구나 AI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고 있구나.”
그런데 이 AI,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 흐름을 어디서 본 적 없을까?
바둑에서 일어난 일 – 알파고와 알파고 제로의 혁명
2016년, 인류는 바둑이라는 영역에서 엄청난 전환점을 맞았다.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는 이세돌 9단을 4:1로 꺾으며, 인간 직관의 마지막 보루 같던 바둑에서조차 인공지능이 앞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이세돌 9단과의 대국을 기억하지만, 정작 더 충격적인 장면은 그 다음에 펼쳐졌다. 2017년 등장한 알파고 제로(AlphaGo Zero)는 단 한 판의 인간 기보 없이, 오직 스스로의 셀프플레이를 통해 불과 40일 만에 기존 알파고를 압도했다.
이 사건은 AI가 인간 지식 기반 없이도 스스로 학습하고 창의적으로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 – LLM과 그 확장
지금 우리는 언어의 세계에서 바둑에서 일어났던 비슷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ChatGPT, Claude, Gemini 등 수많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인간이 만들어온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하며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들 모델은 바둑에서 일어났던 똑같은 알고리즘인 강화학습(RLHF)을 통해 사람의 선호를 더 정교하게 반영하는 방법도 익혀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바둑에서 인간이 먼저 가르치고, 이후 AI가 인간을 초월했던 그 흐름이, 지금 언어 영역에서도 서서히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어가 바둑과 같을까? 다를까?
그런데 여기서 잠깐, 중요한 차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둑과는 달리, 언어는 훨씬 복잡한 세계다. 언어는 바둑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주관적인 영역이라는 점이다. 바둑은 승패가 있고, 규칙이 명확하며, 수의 선택지 또한 한정적이다. 하지만 언어는 정답이 하나가 아니며, 문맥과 문화, 감정과 뉘앙스 같은 비정형적인 요소들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요즘 각광받고 있는 LLM이 다루는 언어의 측면에서 AI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 영역은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현재의 답은 "있다" 이다. 공동 주의가 명확하고, 의미가 고정되며, 목표와 피드백이 명확한 도메인들이다. 대표적으로:
- 프로그래밍: 문법이 명확하고, 출력과 결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미 GPT는 상위 10% 개발자 수준의 코드를 작성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수학: 증명 과정이 엄격하며, 논리적 정합성을 따진다. DeepMind의 AlphaGeometry나 AlphaProof는 수학 올림피아드 문제를 해결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 법률: 판례, 조항, 문서가 구조화되어 있고, 텍스트 비교와 요약이 중요하다. AI는 판결문 초안을 작성하고, 숨겨진 불이익 조항을 탐색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도메인에서는 AI가 이미 “도구”를 넘어 “조력자” 혹은 “대체자”로 진화하고 있다.
마치며 – 인간 중심일까, AI로부터의 배움일까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양가감정을 느낀다. 하나는, 기술은 인간을 통해 완성된다는 믿음이다. AI는 인간의 언어, 데이터, 피드백 없이는 자랄 수 없고, 결국 그 방향성도 인간이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AI가 우리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배워야 하지 않을까? AI가 발견한 전략, 표현, 논리를 통해 우리는 지금의 인간을 넘어설 수 있는 기회를 얻는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전자 쪽에 조금 더 기울어 있다. 이 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Hidden Figures"의 주인공들의 대사에서 발췌해 본다.
Katherine: "They can't replace the mind."
Dorothy: "That’s true. But human beings still push the buttons."